[사진 최권]

고통이 당신을 휘청이게 할 때, 어떻게 하시나요?

인생은 누구나 시간의 흐름을 따라 살아갑니다.

어떤 이는 시간의 수레바퀴와 함께 굴러간다고 말하고, 혹자는 시간의 굴레에 갇혀 있다고 표현합니다.

또 누구는 너무 빨리 지나가는 시간이 아쉽다고 말합니다.

새벽부터 시작하는 목사의 하루도 다르지 않습니다. 하루를 분주하게 살아내다 보면 어느새 해는 서산 너머로 기울어 있습니다.

제대로 작별 인사도 건네지 못했는데, 해는 오늘도 바쁜 걸음으로 짧은 인사만 남긴 채 사라집니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며 스스로에게 “그래, 오늘도 수고했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입니다.

그런데 흘러가는 시간과는 상관없이 고통의 한가운데 서 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시편 116편의 기자가 그러했습니다.

몸과 마음을 짓누르는 고통, 설명하기 어려운 외로움, 끝이 보이지 않는 답답함이 찾아올 때가 있습니다.

고통은 사람을 휘청이게 만듭니다.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이 흔들리고, 확실하다고 믿었던 것들이 불확실해 보입니다.

익숙했던 세상이 낯설어지고, 사람들과의 관계마저 멀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마치 안개 속을 걷는 것처럼 모든 것이 흐릿해지는 순간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그 자리에서도 빛을 바라봅니다.

시편 기자는 큰 고통 속에서 “모든 사람이 거짓말쟁이라”고 말할 정도이지만 하나님을 믿는다고 고백합니다.

그가 하나님을 믿는 이유는 그 수렁에서 건짐받은 믿음의 추억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호와께서는 순진한 자를 지키시나니 내가 어려울 때에 나를 구원하셨도다(6절).”

하나님께서 함께하셨던 은혜의 흔적을 떠올리며 다시 믿음의 숨을 조금씩 내쉬기 시작한 것입니다.

과거의 은혜를 기억하는 사람은 현재의 고난 속에서도 소망을 발견합니다. 그래서 마침내 이렇게 고백합니다.

“주께서 내 영혼을 사망에서, 내 눈을 눈물에서, 내 발을 넘어짐에서 건지셨다(8절).”

고통이 사라져서가 아닙니다. 흔들림이 끝나서도 아닙니다. 흔들리는 순간에도 자신을 붙드시는 하나님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 때로는 우리도 모르게 지쳐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때가 있습니다.

이유 없는 두려움과 설명할 수 없는 염려가 마음을 채울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 잠시 멈추어 보십시오.

눈을 감고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고백해 보십시오. 

“하나님은 살아 계십니다.”  “여전히 나를 붙들고 계십니다.” 우리의 삶에 찾아오는 고통과 아픔은 결코 마지막 이야기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눈물을 기도로 바꾸시고, 상처를 은혜로 바꾸시며, 절망을 소망으로 바꾸시는 분이십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