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최권]
용서는 나를 위해서도 합니다
주기도문에는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라는 기도가 나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용서와 사랑을 가르치셨습니다. 바울도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롬 12:21)고 말합니다. 성경이 반복해서 용서를 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용서는 상대방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사실, 용서는 나를 위해서도 합니다.
누군가를 미워하면 그 사람은 내 앞에 없어도 내 마음속에는 계속 살아 있습니다. 밥을 먹을 때도, 잠자리에 누워서도 떠오릅니다. 이미 지나간 일이 오늘의 마음까지 붙잡고 흔들어 대는 거죠. 상처를 준 사람은 멀리 있는데, 정작 나는 그 사람이 남긴 상처 곁에서 떠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미움은 상대를 향해 던지는 돌 같지만, 오래 품고 있으면 결국 내 마음이 무거워 가라앉고 꽉 쥐고 있으니 상처도 납니다.
용서는 잘못을 잘했다고 인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불의를 모른 척하는 것도 아니며, 반드시 이전의 관계로 돌아가야 한다는 뜻도 아닙니다. 필요한 질서와 경계선은 잘 세우면서도 그 사람이 남긴 미움과 분노가 더 이상 내 마음을 지배하지 못하도록 하나님께 맡기는 것, 그것이 용서의 중요한 포인트 중의 하나입니다.
그리고 기억할 것은, 그리스도인의 용서는 하나님의 용서를 얻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내가 먼저 받은 은혜가 너무 크기 때문에 흘러나오는 열매입니다. 십자가에서 나를 용서하신 그리스도의 사랑을 경험한 사람에게 하나님은 다른 사람을 용서할 새로운 힘을 주십니다. 용서는 억지로 만들어 내는 감정이라기보다 은혜를 경험한 사람에게서 흘러나오는 영적인 힘입니다. 그런 힘이 없을 때는 구해야 하는 것이구요. 그래서 악을 이기는 하나님의 방법은 악보다 더 악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내 손으로 원수갚는 것도 아닙니다. 미움으로 미움을 갚는 순간 우리는 상대방의 악한 방식에 끌려갑니다. 그러나 사랑하고 용서하면 악은 더 이상 나를 자기편으로 만들지 못합니다. 이것이 “선으로 악을 이기라”는 말씀의 아름다운 승리입니다.
아직도 생각만 하면 마음이 아픈 사람이 있습니까? 밤잠을 설칠 만큼 미운 사람이 있습니까? 이제 그 사람 때문에 내게 주어진 아름다운 오늘까지 잃어버리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용서는 과거의 잘못을 지우는 일이 아니라, 과거의 상처가 오늘의 나를 지배하지 못하게 하는 일입니다. 이 글을 읽는 모든 성도님, 모든 판단을 하나님께 맡기고 사랑하고, 화목하고, 하나님께서 주신 오늘을 누리며 살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 용서함으로 악을 이기고, 미움에서 자유로워지며, 하나님께서 주신 행복을 다시 누리시기를 축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