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 365-12월 14일] 순종의 걸음이 큰 기쁨을 보게 할 때

입력:2025-12-14 03:00

찬송 : ‘예수 따라가며’ 449장(통377)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마태복음 2장 1~12절

말씀 : 교회에도, 방 안에도 잔잔한 캐럴을 틀어 놓았습니다. 성탄의 향기 가득한 음악을 들으며 글을 씁니다. 또 한 해가 흘러가지만 그 끝에 큰 기쁨의 성탄절이 있어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아쉬운 미소를 지으며 떠나가는 한 해가 손짓하며 마음을 두드립니다. ‘올해 너의 길은 어땠니. 하나님은 너를 어떻게 인도하셨니.’ 쉬운 답을 찾기 힘든 이 질문에 오늘 말씀 속 동방박사들의 이야기는 따뜻한 답을 들려줍니다.

동방박사들은 유대인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머나먼 이국 땅의 과학자였고 점성술사였고 왕궁의 지혜자였습니다. 말씀을 들었다 해도 바벨론 포로 시절 붙잡혀 온 유대인들에게 들었던 “한 별이 야곱에게서 나온다”(민 24:17)는 예언 정도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무작정 몇 천 킬로를 걸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하늘에 떠오른 한 별을 바라보고 유대까지 온 것이지요. 믿음이 완전해서가 아니라 주신 만큼의 빛에 순종했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을 다 알기 때문에 움직이는 믿음이 아니라 하나님이 보여주신 작은 사인 하나에도 순종할 줄 아는 믿음입니다.

동방박사들은 여전히 부족했고 때로는 길을 잃었습니다. 예루살렘에서는 별이 잠시 사라져 ‘당연히 왕궁이겠지’ 생각하고 헤롯에게 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 방향을 알려주시고 다시 별을 비추어 주셨습니다. “베들레헴으로 가라.” 길을 잃은 자에게 하나님은 또 한 번 은혜의 빛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이 장면을 이렇게 기록합니다. “그들이 별을 보고 매우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마 2:10)

아직 예수님을 만난 것도 아니었습니다. 선물을 드린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단지 다시 나타난 별 하나를 본 것뿐이었습니다. 그런데 매우 크게 기뻐했습니다. 왜일까요.

첫째 하나님이 자신들을 잊지 않으셨다는 증거였기 때문입니다. 둘째 목적지가 가까워졌다는 사인이었기 때문입니다. 가정에서도 이런 순간이 있습니다. 기도가 모두 응답된 건 아니지만 하나님이 내게 작은 구름, 작은 위로를 보내주실 때, 말씀이 불현듯 떠오를 때, 상황 속에서 작은 길이 열릴 때.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반짝 별입니다. 다시 걸어갈 힘을 주시는 사인입니다.

믿음으로 말씀을 따라간 사람에게는 반드시 예수님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동방박사들은 결국 아기 예수를 만나 경배했습니다. 그들은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드렸지만 그들이 받은 것은 더 크고 기쁜 선물이었습니다.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 곧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이었습니다.(눅 2:10~11)

올해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주변에 널린 작은 사인을 놓치고 풀이 죽어 있진 않나요. 동방박사들의 기쁨은 예수님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도하고 계심을 다시 확인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성탄의 계절, 우리의 가정이 기쁨과 평화를 주시는 그 사랑의 빛 안에서 길을 찾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이 늘 보내시는 신호에 센스 있게 화답하시기를 축복합니다.

기도 : 사랑의 하나님, 오늘 우리 가정에도 빛을 비춰주소서. 나아갈 길을 아는 지혜가 있게 하소서. 큰 기쁨과 평화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을 기쁨으로 맞이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주기도문

박주광 목사(예수로광염교회)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s://www.kmib.co.kr/article/view.asp?arcid=1765428030&code=23111511&cp=nv

 

[가정예배 365-12월 15일] 목자의 음성이 들리시나요

입력:2025-12-15 03:07

찬송 : ‘주의 음성을 내가 들으니’ 540장(통219)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요한복음 10장 1~10절

말씀 : 집에 고양이 한 마리가 있는데 성격이 사납다는 종이어서 순해지라는 마음으로 ‘순이’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믿음으로 선포해서 그런지 지금은 정말 순하고 다정합니다. 순이는 제 옆에서 자리를 잡고 가끔 눈을 마주치며 조용히 인사를 건넵니다. 처음부터 이랬던 것은 아닙니다. 저는 고양이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시골에서 자랐던 제게 아버지는 늘 “개와 고양이는 밖에서 키우는 것”이라고 강조하셨기 때문입니다. 아내와 아이들의 간절한 부탁이 아니었다면 집에 들이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처음엔 고양이가 제 몸에 스치기만 해도 어색하고 싫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순이와 단둘이 있게 되는 시간이 늘었고 집에 들어오면 가장 먼저 나와 반겨주는 존재가 됐습니다. 순이도 나름 외로운지, 서열로는 자신보다 낮아 보이는(?) 아빠에게 다가와 애교를 부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서로 ‘대화’ 하는 사이가 됐지요.

요즘은 고양이 울음소리를 해석해 주는 어플까지 생겨 신기할 정도입니다. “밥 먹었어?” “배고파?” 하고 말을 건네면 순이는 저마다 다른 억양으로 “야옹” 하며 답합니다. 함께 산 지 5년쯤 되니 이제는 소리만 들어도 뭘 원하는지 조금씩 알겠더라고요. 오늘 말씀이 양과 목자의 비유인데 저와 순이 속에서도 예수님의 마음이 보이는 듯했습니다.

예수님은 “양이 목자의 음성을 듣는다”(요 10:3)고 하셨습니다. 목자가 양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그 양을 속속들이 알고 있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우리 이름을 부르실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말하지 않아도 주님은 우리의 속마음 필요 기쁨 두려움까지 모두 아십니다. 마치 오래 함께한 존재의 미세한 숨소리만 들어도 그 상태를 아는 것처럼 말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목자이십니다. 우리 음성 속에 담긴 떨림을 들으시고 “지쳤구나” “외롭구나” “위로가 필요하구나” 하고 아십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우리를 위해 오셨고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눈에는 언제나 우리가 중심입니다. 우리는 양입니다. 양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목자의 음성을 분별하는 것입니다. 목자의 음성을 따라갈 때 생명의 길로 가지만 낯선 음성을 따라가면 위험에 빠지기도 합니다.

주님은 오늘도 우리를 부르십니다. “내가 문이니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는다”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 함이라.”

오늘 하루, 목자의 음성에 귀 기울이고 주님의 발걸음을 따라가는 복된 삶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주님은 지금도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기도 : 언제나 우리를 아시고 부르시는 참된 목자이신 예수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게 하소서. 우리 가정의 필요를 아시는 주님께 더 가까이 나가 생명과 풍성함의 길을 따르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주기도문

박주광 목사(예수로광염교회)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s://www.kmib.co.kr/article/view.asp?arcid=1765686051&code=23111511&cp=nv

 

[가정예배 365-12월 16일] 예수님 안에서 보는 세 가지의 빛

입력:2025-12-16 03:05

찬송 : ‘나 같은 죄인 살리신’ 305장(통405)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요한복음 8장 12절

말씀 : 요즘 우리 교회에서는 영어성경으로 요한복음을 암송하고 있습니다. 자연스럽게 눈에 들어오는 단어가 있습니다. 바로 빛(light)과 생명(life)입니다. 요한복음에서는 이 두 단어가 거의 떨어지지 않고 등장합니다. 창세기에서도 하나님의 첫 번째 명령은 “빛이 있으라”(창 1:3)였습니다. 이 빛은 해와 달과 별의 물리적 빛이 아니라, 생명이 태어나고 존재가 가능해지도록 질서를 세우는 영적 빛이었습니다. 해달별은 넷째 날에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모든 인류의 시작점, 하나님의 첫 음성은 바로 빛이었습니다. 그리고 요한복음은 말합니다. 예수님이 바로 그 빛이며 생명이시라고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예수님은 창조의 시점에 이미 계셨고 그 생명을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 빛으로 오셨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창세 때 혼돈 속에서 질서를 세우신 분이 예수님이시고 그 빛이 세상의 시작이었다면, 예수님을 믿는 순간 우리 영혼에도 새로운 시작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으면 우리는 구원받고 살아납니다. 예수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빛을 비추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안에서 우리는 세 가지 빛을 보게 됩니다. 먼저 구원의 빛입니다. 죽음과 죄의 어둠 속에서 우리를 건져내어 생명으로 옮기시는 빛입니다. 둘째 치료하고 살리는 빛입니다. 예수님의 빛은 우리 내면을 밝히 드러내시지만 정죄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위로하고 치료하시는 따뜻한 빛입니다. 내가 어디가 아픈지, 무엇 때문에 힘든지 보여주시고 그 아픔을 딛고 일어설 힘을 주시는 빛입니다. 셋째 길되신 빛입니다. 인생의 방향을 보여주는 빛입니다. 인생이 무엇인지, 내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깨닫게 하시는 빛입니다. 삶이 복잡하고 마음이 무거울 때도 예수님께 나아가면 길이 보입니다. 예수님의 빛을 보면 해법이 보입니다.

죄와 어둠은 계속 우리 눈을 가리려 하고 귀를 닫으려 합니다. 가정에도 어둠이 들어올 때가 있고 마음을 짓누르는 상처의 어둠, 경제적 어려움의 어둠이 밀려올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로 나아와 그 빛 앞에 서서 “빛을 비추소서”라고 기도하면 어둠은 어느새 사라집니다. 생명의 빛, 세상의 빛 되신 예수님이 우리를 구출하시고 회복시키며 새로운 길을 열어주십니다. 지금 마음이 캄캄한 어둠 속에 있는 분들이 있다면 예수님의 빛 안으로 들어오시기를 진심으로 축복합니다.

기도 : 사랑의 하나님, 세상의 빛이요 생명의 빛이신 예수님께 나아가오니 우리의 모든 어둠을 비추시고 구원의 길, 회복의 길을 밝히 보여 주소서. 주님의 빛 안에서 우리의 심령이 살아나고 가정과 삶이 다시 새롭게 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주기도문

박주광 목사(의정부 예수로광염교회)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s://www.kmib.co.kr/article/view.asp?arcid=1765698851&code=23111511&cp=nv

 

 

[가정예배 365-12월 17일] 기쁨이 사라진 자리, 예수님이 오셨다

입력:2025-12-17 03:07

찬송 : ‘가나의 혼인 잔치’ 136장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요한복음 2장 1~11절

말씀 : 오늘 우리 가정에 주시는 말씀은 요한복음 2장의 가나 혼인잔치입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며 첫 번째 표적을 이 혼인잔치에서 물을 포도주로 바꾸는 사건으로 시작하신 이유를 묵상하다 보면 우리 가정이 배워야 할 귀한 은혜가 있습니다.

첫째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을 혼인잔치에서 표적으로 시작하셨다는 사실은 결혼 제도의 의미를 새롭게 생각하게 합니다. 하나님은 창조 때 남자와 여자를 만드시고 결혼을 제정하셨습니다.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룬다”는 말씀은 인간 타락 이전에도 타락 이후에도 반복해 주신 중요한 진리입니다. 결혼은 단순한 제도가 아니라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이해하는 창문입니다. 둘이 하나 되는 경험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우리에게 가까이 오셔서 하나 되길 원하시는지를 실제로 배우게 됩니다. 에베소서에서 바울은 부부 관계를 예수님과 교회의 관계, 곧 예수님과 성도의 연합을 보여주는 모형으로 설명합니다. 사랑이 두 사람을 하나 되게 하듯,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를 하나님과 하나가 되게 합니다.

둘째 가나 혼인잔치가 첫 표적이 된 것은 예수님이 왜 이 땅에 오셨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하나가 되기 위해 오셨고 우리는 그분의 신부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죽음을 앞두고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게 하소서.”(요 17:21) 예수님은 우리를 하나님과 하나 되게 하시려는 사랑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러나 혼인잔치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포도주가 떨어진 것입니다. 요즘 말로 하면 하객은 넘치는데 뷔페 음식이 바닥난 상황과 같습니다. 당시 포도주는 기쁨과 축제를 상징했기에 포도주가 없다는 것은 축제가 멈추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 오실 당시의 인간 세상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축제를 잃어버린 인생들 속에 새 기쁨을 회복시키기 위해 오셨습니다. 잃어버린 사랑, 잃어버린 감격, 잃어버린 예배의 기쁨을 다시 찾아 주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물이 포도주로 변한 이 표적은 단순한 기적이 아니라 예수님이 오신 이유를 분명하게 드러내는 메시지입니다. 영원한 신랑 되신 예수님은 우리 인생의 참된 공급자이자 구원자이십니다.

성탄의 계절입니다. 예수님은 잃어버린 사랑을 되찾고 잃어버린 기쁨을 회복시키기 위해 오셨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다시 웃고 다시 기뻐하며 다시 축제의 마음을 갖게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 : 사랑의 주님, 우리 마음에도 구원의 감격과 처음 사랑의 기쁨을 다시 부어 주소서. 영원한 신랑 되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메말랐던 마음이 포도주처럼 새로워져, 감사와 찬송의 축제가 삶 가운데 다시 살아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주기도문

박주광 예수로광염교회 목사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s://www.kmib.co.kr/article/view.asp?arcid=1765868487&code=23111511&cp=nv

 

[가정예배 365-12월 18일] 예수님과 연결된 가정

입력:2025-12-18 03:07

찬송 : ‘공중 나는 새를 보라’ 588장(통307)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요한복음 15장 5절

말씀 : 예수님은 우리를 가지로, 자신을 참포도나무로 비유하셨습니다. 이 비유는 신앙의 핵심을 아주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가지가 열매를 맺는 비결은 여러 가지가 아닙니다. 단 하나, 포도나무에 붙어 있는 것입니다. 가지가 아무리 모양이 좋아도, 햇볕을 받는 위치에 있어도, 나무에서 떨어지는 순간 생명은 끊어집니다. 수분도 영양분도 생명의 흐름도 더 이상 공급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과의 연결이 멀어지는 순간 영혼은 서서히 메말라갑니다.

예수님 안에 붙어 있다는 것은 단순히 교회를 다닌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그것은 그분께서 주시는 사랑을 계속 공급받는 상태, 말씀이라는 영양분이 끊임없이 흘러오는 삶을 의미합니다. 포도나무는 가지에게 스스로 열매를 맺으라고 요구하지 않습니다. 나무는 그저 자신의 생명을 가지에게 흘려보냅니다. 그러면 열매는 자연스럽게 맺힙니다. 예수님께 붙어 있는 삶도 이와 같습니다. 우리가 애써 사랑하려고 몸부림치지 않아도 주님께서 부어주시는 사랑이 우리 안에 흐를 때 사랑은 자라납니다.

나 자신도, 우리 가정도 예수님께 붙어 있을 때 건강해집니다. 겉으로는 문제없어 보이지만 영적으로는 마른 가지처럼 힘을 잃어버린 가정들이 있습니다. 기도가 끊기고 예배가 사라지고 말씀이 멀어지면 사랑도 인내도 함께 말라갑니다. 예수님 없이 관계를 유지하려 하면 결국 감정에 휘둘리고 쉽게 지치고 상처가 깊어집니다. 그러나 가정이 주님께 붙어 있으면 다릅니다. 마음마다 말씀이 흐르고 예배가 중심이 될 때 그 가정에는 다시 생기가 돌기 시작합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이 말씀은 우리를 위축시키는 말씀이 아니라 살리는 선언입니다. 우리는 혼자 버텨야 하는 존재가 아니라, 붙어 있음으로 살아나는 존재라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말씀이 끊어지지 않고 예배 속에 뿌리내린 가정은 쉽게 무너지지 않습니다. 자녀가 예수님께 붙어 있으면 세상의 유혹 속에서도 방향을 잃지 않고 길을 찾습니다.

열매는 노력의 결과가 아니라 연결의 결과입니다. 우리 가정과 삶에 사랑 기쁨 화평 오래참음의 열매가 맺히기를 원한다면 먼저 예수님께 붙어 있어야 합니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머물 듯 우리 마음도 주님께 머물러야 합니다. 그분 안에 있을 때 우리는 위로를 받고 회복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 안에 붙어 있는 가정은 이 한겨울에도 열매를 먹게 될 것입니다.

기도 : 사랑의 하나님, 참포도나무 되신 예수님께 늘 붙어 있어 그분이 주시는 사랑과 생명을 날마다 공급받게 하옵소서. 내 삶과 가정이 주님 안에 머물러 메마르지 않고 어떤 계절에도 위로와 회복의 열매를 맺는 은혜를 누리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주기도문

박주광 목사(예수로광염교회)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s://www.kmib.co.kr/article/view.asp?arcid=1765868494&code=23111511&cp=nv